<소년한국일보 2008-01-27>

태안 어린이 마음에도 '검은 띠' 빨리 씻겼으면
재난 당하고서야 자연 소중함 깨달아
생계 걱정 부모 보며 마음 편치 않아

물이나 공기는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과 공기를 포함한 자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자연이 심각하게 오염돼 우리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되면 그제서야 자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난 달 초 충남 태안 일대 바다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지요. 동료 직원이 현지에서 e-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제 고향은 천수만에 있습니다. 집에서 30 걸음 정도만 나오면 항구가 보이 곳, 늘 싱그러운 바다의 냄새가 물결치는 한가로운 작은 어촌 마을이 제 고향입니다.

항구에 서면 삽시도와 마주 보고 있는 만 사이로 안면도가 보입니다. 그 곳에 며칠 전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지요. 그래서 이번 주말 시골엘 다녀왔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는 데는 1억 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어렵사리 빚을 내어 배를 장만한 사람들이 지금 비싼 기름을 넣고, 고기잡이 대신 기름을 치우러 다닙니다. 어떻게든 바다를 살려 보자고, 매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보지만 시커먼 기름 띠는 좀처럼 줄어 들지 않습니다.

이곳 어른들은 30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센 파도를 헤치며 고기를 잡고, 깊은 바닷 속에 들어가 전복을 따고, 갯벌에서 조개를 캐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어찌 될지 모릅니다. 시골 바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언론에서는 바다가 다시 살아나기까지는 15 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는 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민들의 한숨이 제 가슴을 때리는듯 했습니다.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들 뿐은 아닙니다. 어린이들의 얼굴에도 슬픔이 가득합니다.

'자연이 죽어 간다. 기름 때문이다. 나는 슬프다.

왜냐하면 물고기를 못 봐서 나는 슬프다. 나는 자연을 아끼기 위해서 쓰레기를 안 버릴 거다.

어른들은 기름을 치우시느라 힘들어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른들은 배도 못 나가서 슬프다.'

한 신문에 소개된 태안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쓴 '까만 바다'라는 제목의 그림 일기입니다. 아직은 재난이나, 슬픔 따위에는 익숙치 않을 나이 임에도 이 어린이의 일기에서는 온통 슬픔이 배어 나옵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100만 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이 태안반도 어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너무나 엄청나서 한두 차례 봉사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다와 갯벌이 회복되기까지에는 엄청난 시간, 비용, 관심,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자연을 되살리고, 어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 일기를 쓴 1학년 아동도 반드시 웃음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유엔은 1959년 발표한 '아동 권리 선언'을 통해 '재난이 닥칠 경우 아동의 삶이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아동 권리 협약 제27조에는 '아동은 적절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와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지켜 보면서 재난을 당한 아동의 권리를 지켜 주는 일이 봉사자들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김인숙(세이브더칠드런 부회장ㆍ중앙 아동 권리 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