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해보이지 않으세요? - 캄보디아 크라체 마을의 모습>

캄보디아에서 생활한지 어느덧 8개월째 접어든 요즈음, 이제는 익숙해진 일상 중의 하나인 정전에 대해 말씀 드려보고자 합니다. 캄보디아의 전기 사정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수도인 프놈펜, 관광명소인 씨엠립 등과 같은 큰 도시에는 전기가 들어오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의 사업장이 있는 크라체와 같이 도시화가 되지 않은 캄보디아 대부분 지역에서는 전기를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는 아예 전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자동차용 배터리를 가정에 비치해 놓고 사용합니다. 집 한 채를 통틀어 보통 작은 전구 한 두 개와 가끔 흑백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기를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배터리를 250원어치 충전하면 4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생활 패턴이 저녁 8시 취침, 아침 4시 기상이기 때문에 전구를 쓸 일도 별로 없지요.

참, 배터리는 어디서 충전하냐고요? 정기적으로 전기 아저씨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동차용 배터리를 수레에 실어 가고, 이를 작은 발전기를 이용해 충전을 시킨 다음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는 형태랍니다. 

지난 3월에는 거의 매일,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번씩 정전이 있었습니다. 건기의 막바지로 평균 기온이 35도가 넘으니 전기 사용량이 급증해서 그러려니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전 사태는 우기의 정점이라 볼 수 있는 10월에도 여전했습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낮 시간, 전기가 한 두 시간씩 나가있는 동안에는, 인터넷과 내선 전화가 끊기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서를 쓰거나, 회의를 합니다.

<저 뒤에 충전하고 있는 배터리가 보이시죠? - 이장님 댁>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저녁 시간 때의 정전입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한 그 다음 날,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과 라면의 환상적인 조합을 경험하려는 순간 전기가 나갔습니다.

어렸을 때 한국에서도 정전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요즘같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한국에 살다가, 이곳에 와서 정전을 경험하니, 사실 이게 정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막막해졌습니다. 초도 라이터도 준비해놓지 않았으니까요.

일단 귀한 라면이 불까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꿋꿋이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동네 전체가 정전이었고, 저 넘어 중심가에만 드문드문 불빛이 보였습니다. 자러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방금 라면을 먹은데다가, 초저녁이라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현지인들은 어떻게 대처하나 싶어서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동네 사람들은 집밖에 나와 길거리에서 잡담을 하거나 행인을 구경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며 생산성과 효율성에 집착해 왔던, 지극히 현대인의 시간 소비 패턴을 갖고 있던 제게, 정전은 그 모든 권리와 의무를 빼앗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책도 볼 수 없고, 텔레비전, 컴퓨터 사용은커녕, 냉장고 안의 우유가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혼자 타지에 나와 살면서, 어두움 자체가 주는 공포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정전을 매일같이 한 두 시간씩 경험한 지금은 어떠냐고요? 지금은 촛불 아래서 아주 기술적으로 저녁을 먹거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답니다. 사색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그려보거나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의 맛을 생각해낸다거나, 아빠와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를 곱씹어보거나 하게 되었습니다.

                                          <가운데 노란옷이 바로 저랍니다! - 아이들과 함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 마을을 보고 매우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기, 우물, 화장실, 학교, 도로 등등 막 한국에서 온 제 눈에 비친 캄보디아는 부족한 것 투성이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지어주고, 도와줘야 되겠다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그런 환경에 맞추어져 있고, 따라서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발과 구호 사업의 지향점은, 이들이 우리와 같은 경제적 지표를 성취하고, 삶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충분한 전기 덕분에 밤낮 없이 시간을 쪼개어 사용할 수 있는 우리가, 진정으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스케줄에 쫓기며 객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캄보디아 크라체에서,
김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