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아동 미술치료
5809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아동 미술치료
홍수 피해 지역 아동들은 홍수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불안과 우울,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연구에서, 연구에 참여한 아동 87%가 스트레스로 지쳐있고 공격적이라 밝혔습니다. 또한, 75%는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고, 70%는 사람과 물, 열린 환경, 어두움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여러 심리진단을 통해 아동의 행동을 분석했습니다. 사용된 진단방법 중 한 가지는 '사람 그리기(Draw a Person)'로 아동의 감정상태를 파악하는 데 쓰였습니다. 많은 아동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물에 빠진 모습, 혹은 학교에서 도망쳐 나오는 모습 등을 그렸습니다. 어떤 아동들은 그림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주의가 분산되거나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아동들은 6개월 전 신드(Sindh)와 펀자브(Punjab), 키베르 파크툰크와(KPK:Khyber Pakhtunkhwa) 주를 덮치고 최대 2,100만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대홍수가 준 상처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대규모의 홍수는 마을을 집어삼켜 주택과 220만 Ha(헥타르)에 달하는 농작지가 황폐화되었고, 쌀과 곡식, 설탕, 과일 및 채소 모두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한 몇 십만 인구가 여전히 실업상태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수 이후로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에 안전한 피난처 174 곳을 세웠으며, 아동 13만 308명이 미술치료 및 집단상담, 상황극 등을 통해 필수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동들은 피난처에서 지내는 동안 일상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최대 700만 명이 집을 잃은 이번 대홍수는 카쉬미르(Kashmir) 대지진(2005년 발생)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2005년 미국에서 발생), 싸이클론 나르기스(2008년 미얀마에서 발생), 인도양 쓰나미(2004년 발생), 아이티 지진(2010년 발생)과 같이, 많은 피해를 입힌 21세기 최대 규모의 재난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홍수피해를 입은 262만 2,000 여 명에게 의료 서비스, 텐트, 조리기구, 정수기기, 식량, 심리치료, 학교수업 등을 지원했습니다.
아래는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친화공간(CFS: Child Friendly Space)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취약한 아동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했는지 보여주는 두 사례입니다.
- 나일라(Naila, 여, 10)의 이야기
나일라(Naila)는 열 살입니다. 자코바바드(Jacobabad) 지방 테실 툴(Tehsil Thul) 지역 내 미르푸르 부리로(Mirpur Buriro)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일라에게는 남자형제 셋과 여자형제 다섯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자말 칸(Jamal Khan)이고 어머니 이름은 하시나(Haseena)입니다.
"홍수가 난 뒤부터는 저에게 최악의 날들이었어요." 나일라가 말합니다. "홍수가 덮칠 거란 이야기에 우리는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시(市)로 떠나 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어요. 언니는 그곳에서 형부와 살고 있어요. 언니네 집은 좁은 데 우리 식구는 많아서 그 곳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어요. 우리는 언니 집에서 가까운 캠프장으로 옮겼지요. 그 곳에서 보낸 날들은 제 삶에 있어 가장 끔찍했어요. 집도, 음식도, 친구도 없었죠. 지금은 학교에 갈 수 있고, 다시 공부도 할 수 있고, 뛰어 놀 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아동친화공간에 다니고 있어요. 홍수 때 힘들었던 기억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다 떨쳐냈어요.
저는 캠프장에서 살아봤고, 또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을 그렸어요. 하이데라바드 캠프장에서 본 사람들은 정말 무례했어요.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을 괴롭혔죠. 저는 그런 캠프장이 너무나 싫었어요.
저는 아동친화공간에 오는 게 좋아요. 정말 즐거워요.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공부하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일요일에도 오고 싶어요. 일요일에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할게 없어요. 그래서 항상 임시학습센터(TLC: Temporary Learning Center)나 아동친화공간에서 우리가 하는 놀이, 읽는 책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곤 해요.
아동친화공간에서 제일 좋은 점은 계속 공부하고 또 친구들과 뛰어 놀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 곳 선생님도 정말 좋아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정말 아껴주세요."
사진/ 홍수에 관한 기억을 그린 날리아(Nalia)의 그림
- 사나(Sana, 여, 6)의 이야기
사나(Sana)는 6살로 자코바바드(Jacobabad) 지방에 있는 툴(Thul) 지역 미르푸르 부리로(Mirpur Buriro) 마을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소밧 알리(Sohbat Ali)씨이며 가게에서 일해 버는 급료로 가족의 생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사나에게는 남자형제 2명과 여자형제 2명이 있습니다.
"홍수에 대해 들었을 때, 저는 정말 겁이 났어요. 일주일 가까이 우리는 라디오 뉴스를 챙겨 들었지요. 그러던 중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에서 확성기로 홍수가 오고 있다고 알려줬어요. 저는 계속 엄마랑 붙어 지냈어요. 이 곳은 원래 비가 잘 내리지 않아서 홍수가 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홍수가 나기 이틀 전, 우리는 마을을 떠나 퀘타(Quetta) 시(市)로 갔어요. 그 곳에 친척들이 살고 있기는 한데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서 집을 빌려 그 곳에서 살았어요.
우리가 마을을 떠난 때는 라마단 기간이었어요. 라마단 기간에는 교통비가 너무 비싸서 우리 짐을 챙겨올 차나 트럭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살림살이며 물건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올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살던 마을로 돌아가지 싶지 않았어요. 그 곳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고, 살던 집도 무너졌으니까요. 살림살이는 홍수에 휩쓸려 내려가거나 도난 당했어요. 그렇지만 퀘타(Quetta)에서 더 이상 낼 집세가 없어서 돌아와야 했어요. 11월에 살던 마을로 돌아왔는데 정말 춥고 안개가 가득했어요.
우리는 홍수로 거의 모든 걸 잃었어요. 마을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빴어요. 마치 무덤가로 온 것 같았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잔해뿐이었어요. 집은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거의 모든 게 부서져 있었어요. 문도, 창문도, 벽도 다요."
그림 설명: "같은 홍수 피해자로서 저는 사람들이 집을 떠나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그림을 그렸어요. 퀘타 시로 떠날 때, 저는 가난한 가족들이 등과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가는 모습을 봤어요.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생생해서 종이에 그려봤어요."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친화공간에 대해: "홍수가 나자마자 부모님은 밖은 상황이 좋지 않다며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밖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났고 모두들 굶주렸어요. 학교 건물은 무너졌고 우리는 놀 데가 없었어요. 아동친화공간이 열리자, 그 곳은 가도 된다 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아동친화공간이 생겨서 좋으시대요. 저도 다시 공부할 수 있어 기뻐요. 우리는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카람(Karam) 보드, 루도(Ludo), 건너뛰기 같은 놀이를 해요. 남자 아이들은 크리켓을 하고요. 마을 친구들 모두가 한 곳에 모여 같이 놀지요.
저는 다른 아이들과 있는 게 좋아요. 장난감과 책도 좋고요. 아동친화공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친절하고 날마다 우리를 도와줘요."
사진/ 사나(Sana, 10)가 그린 홍수에 대한 기억